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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사_사람 - 수제도장 장인 염수현 님

  • 등록일 : 2021-08-25
“도장은 한 개에 50원 이였어요. 나도 할 수 있게 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한남동에서 오랫동안 수작업으로 도장을 제작 해 오신 장인 염수현
 


염수현님은 50년 이상 한남동에서 수제도장을 해 오신 장인으로, 현재는 아들과 함께 2대째 운영을 하고 계신다. 염수현님을 만나 용산구 한남동의 역사와 50년 한길만을 걸어오신 생애를 인터뷰하였다.
 
Q 연세는 어떻게 되시나요?
A 1938년 84세이에요. 원래는 35년생인데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다시 한국에서 호적정리 한다고 신고했기 때문에 서류상은 그래요.
 
Q 언제부터 한남동에 살고 계시는가요?
제가 한남동에 온 게 30살쯤이니깐 한남동에서 산지는 55년 정도 된 거 같아요. 60년대 중반에 온 거죠. 한남동 전에는 강원도 철원에 있었어요. 한남동 정착하여 처음에는 농사도 짓고, 개천 공사도 하고, 건물도 짓고 했어요. 그러다 철원에 있던 부인이 와서 아이도 낳고 계속 사는 거죠.
 
  
Q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남동이 많이 바뀌었나요?
많이 바뀌었죠. 60년대 중반에는 시골이었죠. 한남동 로터리 밑이 다 마늘밭이었어요. 그때는 남산 도로 확장할 때였는데, 집들도 많지 않았고, 개천이 흐르고 그랬죠. 배 타고 다니고 그랬어요. 한남대교 생기고 나서 집 짓고 발전하게 된 거죠. 그리고 미국부대가 많았죠. 외국 사람들도 많았고요. 10년 전에는 현대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었는데, 야채나 과일이 싸고 좋았어요.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이 싸고, 깎기도 하는 인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아쉬워요.
 
Q 살면서 좋았던 추억이 있을까요?
그때는 단국대학교가 있었어요. 동네 축구를 조직해서, 아침 새벽에 단국대 운동장에서 운동했어요. 단국대학교 뒤에 산에서도 모여서 체조도 같이하고 그랬죠.


 
Q 한남인장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수제 도장 제작을 한 지는 50년이 넘었어요. 시작한 게 된 계기는 공사할 때 온종일 죽도록 일해도 하루 인건비가 300원이었어요. 그런데 도장은 한 개에 50원 이였어요. 나도 할 수 있게 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시장 좌판에서 시작했죠. 지금 사라진 시장에서 도장 새기다가, 은행 앞으로 옮겨가서 거기서 계속 도장을 새겼죠. 지금은 한남 인장 가게를 열고 이어서 하고 있죠. 요새는 기계로 도장을 새기는데,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새깁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한남동이 개발되고 옛날 단골손님들이 이사를 가서 없어요.
 
 
Q 표창장들이 많은데 뭐에 관련된 것들인가요?
제가 인장연합회 이사로 있었어요. 연합회에서 전국 인장을 돌아다니며 감사도 하고, 발전을 위해 토론과 회의도 하였죠. 그래서 수고하였다고 상을 주었습니다.
 
 

 글_마을기록활동가 양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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